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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사카린'의 집념, 사카린 족쇄 풀다

aazoo 2012. 6. 7. 19:06

 

 

'미스터 사카린'의 집념, 사카린 족쇄 풀다

 

 

조선닷컴    http://www.chosun.com

 

 

 

반대하는 임원은 사표 받고… 발이 부르트도록 연구소 드나들고… 방송사와도 싸웠다

 

김동길 JMC 회장

사카린 無害 결론 얻어내 외국선 오래전 無害 결론

"국민 인식이 잘못됐다면 바로 알리고 고쳐야"

공무원·국회의원 숱하게 설득

 

 

 

2004년 11월 제일물산을 인수할 때만 해도 그가 '사카린 전도사(傳道師)'가 될 줄은 몰랐다. 인공감미료 사카린은 1970년대 발암물질 논란에 휩싸이면서 국민들 뇌리에 '공포의 백색 가루'로 새겨졌다. 1992년부터 정부 규제가 본격 시작돼 젓갈·김치·절임식품 정도를 제외하면 식품에 쓸 수 없는 물질이 됐다. 국내 사카린 시장도 사그라졌다. 제일물산과 함께 한때 '사카린 3강(强)'을 형성했던 나머지 두 회사는 1990년대 말 사업을 접었다. 한국에서 사카린은 그렇게 끝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 후, 이공계 출신의 한 중소기업인이 사카린의 '누명'을 씻는 데 뛰어들었다. 그는 20년간 사카린에 채워졌던 족쇄(사용규제)를 지난달 말 풀었다.

사카린에 빠지다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1971년부터 염료 전문 회사를 키워온 김동길(74) JMC 명예회장은 사카린 수출로 승부를 보겠다고 결심했다. 한국과 달리, 미국·일본·유럽에선 커피, 다이어트 음료 등에 흔히 쓴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이후 JMC는 미국·유럽 굴지의 제약·식품회사에 생산량의 90% 이상(300억∼400억원 규모)을 수출하며 사카린 회사를 지켜왔다.

"회사를 흑자로 돌려 놓긴 했는데, '발암 물질 사카린'이라는 엉터리 얘기가 나올 때마다 속상했어요. 2010년에 미국서 공부한 사람을 사장으로 앉히고 자료 조사를 시켰죠. 우리나라처럼 말도 안 되는 규제를 하는 나라가 없었습니다."

 

 

‘사카린=유해 감미료’라는 일반인들의 고정관념과 끈질기게 싸워 규제 완화를 이끌어낸 JMC의 김동길(74) 명예회장이 서울 염창동 실험실을 둘러보며 사카린의 용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사카린 얘기만 나오면 김 회장은 목소리가 커진다. 설탕보다 300배 달지만 값은 40분의 1 수준이고, 열량이 없어(0cal) 비만·당뇨 환자도 안심할 수 있는 사카린을 왜 못 쓰게 하느냐고 했다.

사카린은 이미 십수년 전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와 미국 독성연구프로그램(NTP)에서 발암 물질이 아닌 것으로 공식 결론이 났다. 2010년 미국 환경보호청(EPA)까지 사카린을 유해물질 목록에서 삭제했다는 소식을 접했지만, 국내에선 변화의 조짐조차 없었다.

방송 프로그램까지 '사카린은 발암물질'을 외쳐대는 상황에서 싸움은 외로웠다. 방송사에 직원들을 보내 사카린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정정보도를 받아냈다. 자신의 승용차에도 사카린의 진실을 알리는 홍보책자를 싣고 다니며 만나는 사람마다 나눠줬다.

◇'왜곡된 상식'과의 외로운 싸움

그러나 사내(社內)에서도 김 회장을 말렸다. 어차피 값싼 중국산이 국내 시장을 모두 장악한 상황에서 굳이 나설 필요 없다는 의견이었다. 끝까지 반대하던 임원한테 그는 사표를 받았다. 2011년 2월 청와대에 진정서를 내고, 3월에는 식품의약품안전청에 관련 법 수정을 신청했다. 한 달 만에 자료 불충분으로 식약청에서 퇴짜를 맞자, 식품화학 전문가를 이사로 영입했다. 이후 서울대와의 연구 협력을 통해 빵·과자·주류에서 사카린을 섭취해도 1일 허용량을 넘지 않음을 확인했다. 직원들은 롯데·오리온 같은 국내 식품 대기업 중앙연구소를 내집 드나들듯 했고, 식품 생산 공정상 조리 온도, 산도(酸度)와 무관하게 사카린은 안전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해 8월 이 모든 자료를 제출하고 나서야 식약청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11월에 공청회가 열렸고, 소주·탁주·껌·잼·양조 간장·소스류·토마토케첩·조제 커피 등 8개 식품에 사용할 수 있도록 사카린 사용 기준을 새로 정한 법이 12월에 생겼다. 이 법은 올해 3월 말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그동안 식약청 관계자는 물론 국회의원까지 숱하게 만났다는 김 회장은 "국민 인식이 잘못됐다면 바로 알리고 고쳐 나가야지, 과학적으로 사카린이 안전하다고 인정하면서도 '국민 정서 때문에 안 된다'고 말해온 이들을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사카린(saccharin)

1만배로 희석해도 사라지지 않을 정도로 단맛이 강한 인공 감미료(화학 분자식=C7H5ZNO3S). 인체에 흡수되지 않고 칼로리가 없어 미국·일본·유럽에서는 비만·당뇨 환자들 사이에 설탕 대용으로 널리 쓰인다. 우리나라에서는 1992년부터 김치·젓갈·절임·조림 식품 정도로 사용범위가 대폭 축소됐다가 2012년 3월 소주·탁주·껌·잼 등 8개 식품에 대한 사용이 추가로 허용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