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서해안 고속도로를 두 시간쯤 달려 도착한 충남 홍성군 덕정마을은 전형적인 한국의 농촌이었다.40세 이하 젊은이를 찾아보기 힘들었고, 뜰에는 간간이 노인들의 모습만 보였다. 나지막한 뒷산이 마을을 넉넉하게 끌어안았고, 논에는 푸릇푸릇한 모가 종아리 높이로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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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남 홍성군 덕정마을에 남아 있는 옛 광천석면광산의 흔적. 수십년 동안 석면 원석을 캐내 산봉우리가 깎아지른 절벽이 됐다. 홍성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 이방인을 반갑게 맞이해 주는 노인들은 저마다 ‘석면의 공포’에 짓눌려 있었다. 지금은 70여가구밖에 남지 않은 덕정마을이 일제시대에 아시아 최대 규모의 석면광산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징용으로 끌려온 조선인을 포함해 1000여명의 노동자가 석면 원석을 캐고 나르던 기억은 이제 몇몇 주민들의 머릿속에 남아 있을 뿐이다. 그들이 전하는 석면광산의 기억은 평화로운 마을의 모습과 사뭇 대조적이었다.
3대째 이 마을에 살고 있는 이정석(79)씨는 광천석면광산의 50여년 역사를 두 눈으로 지켜봤다. 자신도 열두살 때부터 30년간 광산에서 일했다는 이씨는 “눈꽃이 핀 것처럼 돌가루와 석면가루가 소나무에 하얗게 쌓여 있었다.”고 회상했다.“석면 원석을 보면 가느다란 흰 줄이 있어. 그게 석면이거든. 그걸 뽑아 내려고 돌을 빻았지. 그땐 마스크 같은 게 있나. 그냥 먼지를 다 마시는 거야.”
건강검진은커녕 변변한 보신책(保身策)도 없었다.“수당받는 날 돼지고기 몇 점 사먹는 거지. 목에 쌓인 먼지 씻는다고….”
●일제시대 아시아 최대 석면 광산… 1000여명 일해
광복 이후 광산이 외지인에게 팔리면서 광천석면광산의 규모는 쪼그라들기 시작했다.1983년 폐광 직전엔 근로자 수가 100여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노출 후 잠복기가 긴 석면의 특성 탓에 광산과 주민 피해의 상관관계는 아직 공식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온 가족이 광산에서 일했다는 홍순표(48)씨는 가족의 대부분이 제 수명을 채우지 못하고 사망했다. 홍씨의 아버지 3형제가 모두 광산에서 일했는데, 아버지 홍종수씨는 1970년 51세에 사망했고, 큰아버지 홍갑수씨는 10년 뒤 66세에 세상을 떴다. 작은아버지 홍수복(74)씨는 형제 중 유일하게 살아있지만 관절염이 심하다. 홍씨의 고모와 고모부 역시 광산에서 일하다 30대의 젊은 나이에 폐병으로 요절했다. 홍씨의 형은 17세 때 굴이 무너지며 목숨을 잃었다. 홍씨는 “그땐 병원도 가지 못한 어르신들 대부분이 병명도 모르고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기침이 잦고 오랫동안 앓았던 기억만 남아 있다.
●“마스크 없이 석면가루 먼지 그대로 들이마셔”
마을회관에서 만난 이장 이조민(64)씨는 마을 출신 피해자를 거의 다 기억하고 있었다. 이장의 입에선 사람들의 이름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가장(家長)이 죽고 나머지 가족들이 외지로 간 사람도 많고…다하자면 한도 끝도 없어. 신○○ 형제도 둘 다 폐병으로 죽고, 강○○씨 아버지, 김○○씨 아버지…죄다 환갑잔치도 못 치르고 죽었으니 악상(惡喪)이 많았지.”이장 자신도 어머니(사망 당시 57세)를 폐암으로 잃었다.
지금은 서울에 사는 이석동(66)씨의 아버지도 광산 생활 15년이 죽음으로 돌아온 경우다.1967년 이씨의 아버지는 5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당시 진단은 폐결핵이었지만, 이씨는 석면으로 인한 폐암일 것으로 믿고 있다.“담배도 피우셨지만 워낙 석면 먼지를 많이 드셨어요. 돌아가시기 3∼4년 전까지 광산에서 일하셨으니까요. 정확한 병명을 모르니, 애꿎은 결핵약만 드셨지요.”아버지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주위에 환갑을 못 넘기고 돌아가신 분들이 많아요. 옛날엔 폐결핵이 흔했다지만, 덕정마을은 주변 마을에 비해 훨씬 심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게 다 석면 때문이지요.”
●인근 담산리 주민 중 폐질환 사망자 없어 대조적
국립 홍성의료원 진료기록에서도 덕정마을의 심각함은 드러난다. 내원자의 병명 기록이 남아 있는 2000년 이래 폐 관련 질환으로 병원을 찾은 상정리(덕정마을 포함) 주민은 41명이었고,7명이 폐암 판정을 받았으며,3명이 사망했다. 인구가 비슷한 인근 담산리 주민 중 같은 기간 폐 관련 질환으로 사망한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에 비하면 주목할 만한 수치다.
한때 수만평에 이르는 3개 광구를 갖췄던 덕정마을의 석면광산은 녹화작업으로 풀숲이 우거졌다. 지금은 석면 원석을 캐내 천길 낭떠러지가 된 절벽과 발에 차일 정도로 흔한 흰색 석면줄을 품은 돌멩이들이 당시의 엄청난 작업량을 짐작케 할 뿐이다. 광산은 과거가 됐지만, 광산이 남기고 간 석면의 상처는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홍성 이창구 김민희기자 window2@seoul.co.kr
그래픽 강미란기자 mrkang@seoul.co.kr
■앞으로 40년간 늘어날 환자 유럽 25만·일본 10만3000명
석면 사용량은 산업화에 비례한다. 건축 자재나 자동차 부품에 주로 쓰이기 때문에 산업화가 진행될수록 사용량도 폭증했다. 부작용도 비슷한 과정을 거친다. 산업화가 먼저 진행된 미국·영국 등 선진국에서 대규모 피해가 먼저 나타났고, 한국 등의 후발 산업국가에서 피해 조짐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산업화 단계에 있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위험성을 따질 겨를도 없이 석면을 마구잡이로 사용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1950∼60년대 보일러공에게서 먼저 악성 중피종이 집단 발병했다. 보일러를 단열성이 뛰어난 석면으로 감쌌던 탓이다. 영국에선 1970년대 글래스고·버밍엄 등 공업지역을 중심으로 중피종이 확산됐다. 미국은 1972년부터 석면 규제를 시작했으나 세계적인 공감대는 1980년대에 이르러서 형성됐다. 일본은 1983년부터 일부 석면 제품의 수입을 금지하기 시작했다.1999년에는 유럽연합(EU) 13개국이 석면 사용을 전면 금지했고,2002년 1월엔 프랑스가 독일·이탈리아에 이어 8번째로 석면의 생산·수입·판매를 불법화했다.
우리나라는 1997년에서야 청석면·갈석면의 사용을 금지했고, 모든 석면의 사용 금지는 내년에야 실현될 전망이다.
하지만 선진국에서도 아직 석면 공포는 끝나지 않았다. 미국에서 발행되는 권위있는 보건잡지 ‘더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에 따르면 2004년에 환자수가 정점을 지난 나라는 미국 뿐이다. 유럽은 2015∼2020년, 일본은 2025년에 정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40년간 늘어날 환자의 수도 유럽 25만명, 일본 10만 3000명, 미국 7만 2000명, 호주 3만명 등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매년 10만명이 석면 관련 질병으로 사망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가톨릭대 의대 김형렬 교수는 “최근 일본에서 부작용이 속속 나타나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도 향후 25년간 석면 피해가 크게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앞으로 국제사회가 풀어야 할 과제는 급증하는 아시아의 석면 사용을 막는 일이다. 노동건강연대 이상윤 정책국장은 “현재 건설공사가 활발한 중국·인도·태국 등에서 석면 사용량이 늘고 있다.”면서 “비극을 답습하지 않도록 모든 석면 사용을 하루빨리 금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석면은 허가된 살인도구… 통제 못한 정부 책임 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죽음 앞에 놓인 심정을 아십니까. 우리에게 내일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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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사율 100%로 알려진 악성 중피종과 싸우고 있는 나카무라 사네히로(왼쪽)와 하이숙씨.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
한국과 일본의 노동·환경단체들은 지난달 18∼19일 서울대병원에서 ‘석면 문제 해결을 위한 한·일 공동 심포지엄’을 열었다. 석면 전문가, 환경 운동가, 직업병 전문의, 사망자 가족 등 100여명이 참석한 이 행사에서 단연 주목을 받은 이들은 악성 중피종과 싸우고 있는 한국과 일본의 두 피해자였다.
●“폐렴인 줄만 알았는데…”
창밖에는 비가 내렸다. 하이숙(54·여)씨는 “날이 궂으면 기침이 더 심해져 말을 제대로 할 수 없다.”며 힘겹게 말문을 열었다. 하씨는 국내 최대 석면공장이었던 부산 연산동의 제일화학에 1971년 5월부터 2년 4개월간 다녔다. 최근 집단 피해 조짐이 보이고 있는 바로 그 공장이었다. 현재는 ‘제일E&S’로 이름이 바뀌었고, 공장도 양산으로 옮겨졌다.1992년부터는 석면 제품을 생산하지 않는다.
하씨와 동료들은 천으로 된 일반 마스크만 쓴 채 석면 가루가 풀풀 날리는 공장에서 일했다. 석면 입자는 머리카락 굵기의 5000분의1 정도여서 공기중 분진을 99.97% 이상 걸러내는 특수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5년 전 하씨는 갑자기 기침이 심해져 보건소를 찾았다. 보건소에서는 폐렴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아무리 약을 먹어도 차도가 없어 큰 병원으로 갔으나 의사는 “왜 자꾸 폐가 굳어지는지 알 수가 없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씨는 1995년에 석면폐(진폐증)로 사망한 동생을 떠올렸다. 동생 역시 같은 공장에 다녔다. 하씨는 의사에게 “석면 공장에 다녀서 이렇게 된 것 아니냐.”고 물었지만 “당신이 뭘 아느냐.”는 면박만 돌아왔다. 폐병 환자라는 주변의 멸시를 참고 견뎌온 하씨는 결국 2005년에 악성 중피종 판정을 받았다. 다행히 직업병으로 인정돼 산재 처리를 받았다. 그러나 완치가 안 된다는 사실에 하루하루 좌절하며 살아간다. 같은 공장에 다녔던 하씨의 남편도 걱정이다. 남편 하재복(56)씨는 “죽어가는 아내를 보는 것도 괴롭고, 내가 언제 이 몹쓸 병에 걸릴지 몰라 괴롭다.”며 눈물을 훔쳤다.
●“한국은 심각성 깨닫지 못하는 것 같아”
38년 동안 건축 현장에서 일한 나카무라 사네히로(59) 역시 가쁜 숨을 내쉬었다. 목수로, 현장 감독관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일하던 나카무라는 2003년 2월 ‘사형선고’를 받았다.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의 심한 가슴 통증으로 병원을 찾았더니 흉막에 악성 중피종이 생겼다는 진단이 나왔다. 의사는 “기껏해야 2개월 정도 더 살 수 있다.”고 했다. 나카무라는 죽을 각오로 그해 5월 수술대에 올라 오른쪽 흉막을 들어냈다.15시간의 긴 수술이 다행히 성공적이어서 생명을 지금까지 연장할 수 있었다. 나카무라는 “수술이 아무리 잘 됐어도 완치가 안된다는 사실에 또 한 번 절망했다.”면서 “죽을 때까지 석면의 위험성을 알리는 것을 보람으로 여기며 살고 있다.”고 말했다.
나카무라는 요즘 석면피해자 가족 모임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지만 계단을 제대로 오르내리지 못할 정도로 심장이 약해졌다.
나카무라는 “일본은 석면 때문에 큰 홍역을 치러 위험을 잘 알고 있지만 한국은 여전히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는 것 같다.”면서 “허가된 살인도구인 석면 제품을 무책임하게 생산한 업자나, 그 위험성을 통제하지 못한 정부의 책임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처럼 큰 피해를 당하기 전에 한국은 미리 석면이 함유된 건축물과 제품을 잘 처리해 대재앙을 피해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용어클릭
●석면 단열성, 내화성, 내마모성이 뛰어나 건설자재로 많이 사용되는 솜 같은 물질로 슬레이트, 자동차 브레이크 패드, 석고보드, 단열재 등에 널리 사용됐다. 몸 속에 들어가면 폐에 박혀 사라지지 않고 석면폐, 폐암, 악성 중피종 등을 유발한다. 청석면, 갈석면, 백석면, 악티노라이트, 안소필라이트, 트레모라이트 등으로 나뉜다.
●악성 중피종 석면에 의해서만 유발되는 암으로 흉막(폐막), 복막 등이 딱딱하게 굳어지며 사망한다. 석면 노출 후 20년 이상 경과한 뒤 발병하며, 치사율은 100%다.
●구보타 사태 석면을 함유한 외벽재와 파이프를 생산해 온 일본의 대형 석면공장인 구보타의 근로자와 주민에서 중피종 환자가 발견됐다고 1995년 발표돼 일본 사회를 큰 혼란에 빠트렸던 사건.1978∼2004년 사이에 근무한 전·현직 종업원 79명이 중피종 등으로 숨졌고,18명이 치료를 받고 있으며, 공장 주변 주민 3명에게도 중피종이 발생했다. 현재까지 구보타 피해자는 15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탐사보도-석면의 공포] 정부도 국민도 ‘죽음의 가루’ 불감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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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찾은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 재개발 현장. 굴착기 5대가 부지런히 건축 폐기물을 퍼담았고, 쉴새없이 물을 내뿜는 대형 스프링클러는 공사장에서 흩날리는 먼지와 여름의 더위를 가라앉히고 있었다. 달동네가 그렇듯, 이 지역의 낡은 주택들은 거무튀튀하게 색이 바랜 슬레이트를 수십년째 지붕에 이고 있었다. 값싸고 불에 타지 않는 슬레이트는 도시·농촌을 가리지 않고 지붕재로 인기였다. 하지만 슬레이트는 석면을 30% 이상 함유한 위험 물질이다.
●마구잡이 석면 해체
슬레이트 지붕을 제거할 때는 바닥에 비닐을 깔고 석면이 날아가지 않도록 하나씩 떼서 옮겨야 한다. 이런 규정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을까. 공사장 옆 P아파트에 사는 한 할아버지는 “공사업체에서 알아서 처리하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공사장 인부의 말은 달랐다.“어떻게 그걸 일일이 떼서 처리합니까. 공사 시작부터 굴착기로 찍어 내렸지요.”
시민들과 인부들은 석면에 대해 잘 모르거나 관심이 없고, 석면덩이 제품을 마구 해체해도 관리감독하는 곳은 찾기 어렵다. 그러는 사이 석면 먼지는 공사현장 주변을 날아다니고 있다. 같은 날 서울 강남구의 3층짜리 상가건물의 리모델링 현장. 안으로 들어가보니 인부들이 노루발못뽑이(일명 빠루·굵고 큰 못을 뽑는 연장)를 들고 천장을 부수고 있다. 천장재는 굉음과 함께 바닥으로 떨어졌고, 매캐한 먼지가 풀썩 솟았다.
석면이 함유된 천장재를 제거하려면 현장 전체를 비닐로 둘러싼 뒤 못을 하나씩 빼고 천장재를 차례로 제거해야 한다. 공사 업체나 근로자들은 시간과 돈이 훨씬 적게 든다는 이유로 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 함께 현장 취재에 나선 가톨릭대 예방의학교실 이승철 연구원은 “제거작업에서 가장 지켜지지 않는 부분이 바로 천장재 철거”라면서 “석면이 날리지 않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가 지난해 노동부의 의뢰를 받아 전국 84개 건물의 석면 분포를 조사한 결과,76개 건물(90%)의 건축재에 석면이 들어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백도명 연구소장은 “텍스와 같은 천장재는 부서지기 쉬우면서 석면 함유량도 많아 특히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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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면 불감증이 심각하다. 가톨릭의대 예방의학교실과 함께 둘러본 서울시내 아파트 재건축 현장에서는 슬레이트 등의 석면 건축자재가 아무렇게나 철거되고, 공사장 부근에 마구 버려져 있다. 석면가루가 날릴 가능성이 우려된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
대책이 없기는 학교도 마찬가지. 지난해 1월 재개발 공사가 한창이던 서울 반포주공3단지 내 원촌중학교 학생과 학부모들이 “안전조치 없이 아파트를 철거해 석면에 노출됐다.”며 공사금지 가처분신청을 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였다. 해체작업은 수업시간을 피해 어렵사리 진행됐고, 지금은 신축공사가 한창이다.
●생활 주변에는 온통 석면덩어리
주변에 학교를 끼고 있는 건축현장은 전국적으로 504곳. 하지만 공사현장에 석면이 얼마나 있는지 파악조차 되지 않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1억 3000만원의 예산을 들여 시범조사와 예방교육을 벌일 예정”이라면서도 “석면은 날리지만 않으면 큰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에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석면 함유 건물은 6개월마다 정밀 조사해 비산 위험성을 측정하고, 학교를 폐쇄한 뒤 석면 해체작업을 벌이는 미국과는 대조적이다. 미국은 1985년 학교보건법(AHERA)을 제정해 학교 건물의 석면 함유 여부를 모두 조사했다.
자동차의 제동장치인 브레이크 라이닝에 석면이 들어간 제품은 지난해부터 사용이 금지됐다.
하지만 시중에는 여전히 석면이 들어간 재고품이 유통되고 있다. 한 카센터 직원은 “석면 제품과 비석면 제품의 가격차가 많게는 40배 이상”이라면서 “대형 트럭이나 택시는 저렴한 석면 제품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석면이 들어가지 않은 브레이크 라이닝은 3만 7000원, 석면 제품은 860원이다. 석면이 들어간 브레이크 라이닝은 지금도 브레이크 페달을 밟을 때마다 거리 곳곳에서 석면 가루를 내뿜는다.
단열재, 방음재 등 주택 내부 자재는 물론 바닥의 비닐타일, 세탁기, 헤어드라이어에도 석면이 쓰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환경사회정책연구소 신예섭 사무국장은 “가끔 큰 사고가 나야 유출되는 방사능보다 아무 때나 날리는 석면이 더 위험하다.”면서 “정부나 국민이 석면에 너무 무감각한 것은 아닌지 다시 생각해 볼 시점”이라고 경각심을 촉구했다.
이창구 김민희기자 window2@seoul.co.kr |
[탐사보도-석면의 공포] ‘반환 미군기지’ 석면 덩어리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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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면이 많이 들어간 건축자재가 쓰인 대표적인 건물의 하나가 미군기지다. 대부분의 미군기지는 석면의 위험성이 알려지기 시작한 1970년대 이전에 지어졌다. 기지내 환경 문제가 토양·지하수 오염에 초점이 맞춰져 왔지만 석면의 위험성은 간과됐다.
우리보다 먼저 석면 피해를 경험한 일본에서는 1986년 미 해군 요코스카 기지가 석면 폐기물을 불법 투기한 게 밝혀지면서 석면이 사회적인 문제로 부상했다.
일본 가나가와 산재직업병센터에 따르면 요코스카 기지에서 1990년부터 2005년까지 모두 98명의 일본인 근로자가 석면으로 인한 산재 판정을 받았다.2002년에는 미군기지 석면피해자 16명이 국가(고용주)와 미군(사용주)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일본과 미국으로부터 피해보상을 받을 수 있는 길을 텄다.
우리나라 실정은 어떤가. 보상은커녕 석면이 전혀 제거되지 않은 채 미군 기지를 되돌려받는 중이다. 한·미 양국이 2004년 체결한 연합토지관리계획(LPP)과 용산기지이전협정(YRP)에 따라 2011년까지 66개의 미군기지가 반환된다. 경기도 화성 매향리사격장 등 23개 기지가 지난달 31일까지 우리 정부로 돌아왔다.
대부분의 기지에서는 오염된 토양과 지하수가 복구되지 않고 반환됐다. 환경부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단병호 의원(민주노동당)에게 제출한 9개 기지의 오염 조사결과에 따르면 매향리 사격장 토양에서는 중금속인 납이 기준치(100㎎/㎏)의 34배가 넘는 3445㎎/㎏이 검출됐으며, 의정부의 에셰욘 캠프의 지하수에서 검출된 TPF(석유계총탄화수소)는 1298㎎/ℓ로 기준치(1.5㎎/ℓ)의 865배다.
석면은 미국측이 책임지고 처리해야 할 8개 치유항목인 지하유류저장탱크 제거, 변압기 절연유 제거, 유출물 청소, 저장탱크 유류배출 등에 포함되지 않았다. 환노위 우원식(열린우리당) 의원 측은 “그동안 미군에 석면 처리를 꾸준히 요구해 왔으나 묵살됐다.”면서 “오는 25일부터 열리는 ‘반환 미군기지 환경치유에 관한 청문회’에서 석면 문제를 다시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주한 미군은 자국의 석면 관련 법에 따라 한국 기지의 어디에 석면을 많이 사용했는지 파악해 왔다. 해체 작업도 진행해 왔다. 그러나 반환이 결정된 이후부터는 해체 작업이 중단된 상태이고, 그들이 그린 ‘석면 지도’는 한·미행정협정(SOFA)상 외교문서로 분류돼 공개되지 않고 있다.20여년간 미군기지의 석면 해체 작업을 맡은 한 업체의 사장은 “기지 건물의 지붕, 하수도 파이프, 기계실, 난방실 등이 온통 석면 제품이었다.”면서 “반환 결정이 나면서부터 일감이 뚝 떨어졌다.”고 말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석면이 함유된 건축물 등은 오염 폐기물로 볼 수 없어 미국에 치유 의무를 부과하기 힘들다.”면서 “반환 완료 뒤에는 ‘공여구역 주변지역 지원특별법’에 따라 우리 정부가 부담해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탐사보도-석면의 공포] (중) ‘위험지역’ 지하철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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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보다 심각하다. 곳곳에서 석면이 검출됐을 뿐만 아니라 석면이 공기중에 날리는 비산(飛散) 가능성도 크다.”
서울신문이 한양대 노영만 교수팀이 작성한 방배역 ‘석면지도’를 분석한 결과 승강장·역무실·매표실·대합실·복도·계단 등 대부분의 지역에서 석면이 검출된 것으로 12일 나타났다. 지하철 석면지도는 국내에서 처음 작성된 것이다. 정부·학계·지하철노사·시민단체의 석면 전문가 20명으로 꾸려진 태스크포스(TF)팀은 방배역 석면지도를 보고 심각성에 의견을 같이했다. 방배역은 내년 초부터 폐쇄될 전망이다.
●석면지도 작성… 예상보다 심각
승객들이 주로 이용하는 방배역 승강장 천장의 35개 채취 시료에서 모두 석면이 발견됐다. 승강장 천장에서 석면이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했고, 바닥에 떨어진 2개 시료에서도 석면이 검출됐다. 승강장 천장에 뿜칠된 석면은 열차 통과시 발생하는 강한 열차풍으로 비산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지적됐다. 승강장 천장과 벽, 내부 계단 천장, 민원실 바닥에서는 백석면 외에 트레몰라이트 등 독성이 강한 석면이 검출돼 충격을 주고 있다.
성균관대 의대 김동일 교수는 “트레몰라이트 등은 백석면보다 발암 위험이 100배 이상 높다.”면서 “대부분 백석면이 수입된 것으로 기록돼 있으나, 독성이 강한 다른 종류의 석면도 많이 수입된 것 같다.”고 지적했다.
●백석면보다 발암위험 100배
김 교수는 “공기중 석면 농도는 공공장소 기준치(0.01개/㏄)보다 낮지만 기준치는 다분히 상징적인 의미일 뿐이고, 극소량에 의해서도 중피종이 유발된다.”고 경고했다.
신설동역도 대표적인 위험 지역으로 꼽힌다.TF팀은 역사 폐쇄보다는 심야 시간대 작업을 권고했다. 환승역이어서 폐쇄가 쉽지 않은 데다, 승강장 천장보다는 열차가 지나는 선로 천장에 석면 뿜칠이 많이 돼 있어 운행을 전면 중단하지 않는 한 역사 폐쇄가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서울메트로는 일단 방배역과 신설동역의 석면부터 처리한 뒤 석면이 검출된 다른 역에 대한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영등포구청·한양대·을지로입구·신림·시청·선릉·상왕십리·삼성·봉천·문래·낙성대·교대·서초·충무로·숙대·성신여대입구 등 조사한 17개 역에서 모두 석면이 검출됐다.
서울메트로 노조 허철행 산업안전부장은 “조사한 역은 의심이 가는 곳을 선택해 조사한 것뿐이며, 서울의 다른 역사나 개통된 지 오래된 부산지하철도 조사를 하면 석면이 검출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조의 자체 조사결과에서 서울 1·2·3·4호선에 건축마감재와 환기 및 전기설비, 전동차 부품 등에 석면이 사용됐다.1∼4호선 모두 1993∼2000년 실시된 역사 리모델링 공사에서 석면자재를 철거한 다음에 다시 석면자재로 재시공됐다.
심각성에 비해 석면 제거 작업은 더디기만 하다. 비산 가능성이 있는 방배역은 이달 중순부터 응급조치에 들어갈 예정이었으나 제거작업 업체도 선정되지 않았다.
서울메트로 김근수 시설본부장은 “제대로 된 업체가 없어 섣불리 나섰다가는 오히려 비산을 촉진시킬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이창구 김민희기자 window2@seoul.co.kr
[탐사보도-석면의 공포] 석면 피해 ‘악성 중피종’ 얼마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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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면으로 인한 피해는 머나먼 남의 일일까.
일본 간사이 노동자안전센터가 발표한 악성중피종 사례.40여년 동안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한 60대 일본 남성은 악성 중피종이 발견된 지 3년만에 숨졌다. 석면공장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었지만 1970년대 학교 신축공사를 할 때 석면에 노출된 것으로 추정됐다. 동료 교사들은 그가 학교 청소를 유난히 열심히 했다고 전했다. 일본의 시민단체인 ‘석면전국연합’은 석면으로 인한 피해를 6가지로 분류한다. 직접 직업노출과 간접 직업노출, 가정내 노출과 근린 노출, 환경 노출, 노출원 불명 등이다. 숨진 일본인 교사의 경우는 ‘간접 직업노출’에 해당된다. 노동자는 물론 노동자의 가족, 공장 주변 주민, 일반 시민들까지도 피해에서 안전하지 않다.2005년 ‘구보타 사태’의 피해자 중 한 여성은 석면과 아무런 상관이 없었지만 악성중피종 진단을 받고 왼쪽 폐를 떼어냈다. 조사 결과 그녀가 나고 자란 효고현에 바로 구보타 공장이 있었다. 단지 공장 주변에 거주했다는 이유로 중피종에 걸린 ‘근린 노출’ 피해자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인에 대한 석면 관련 역학조사가 한 번도 이뤄진 적이 없다. 다만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서 악성 중피종 환자가 증가하는 추세를 파악할 수 있다.2001∼2006년 악성 중피종 진단을 받아 건보공단에서 보험금을 청구한 사람은 모두 1177명이다. 이 기간에 악성 중피종으로 산업재해 인정을 받은 근로자가 모두 46명임을 감안하면 일반인들에게도 악성 중피종이 발생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석면의 공포 (하)] [서울신문 탐사보도] 건축땐 권장… 철거땐 ‘엉성한 폐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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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석면 대책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석면의 수입·제조·사용에서 건축물의 철거에 이르기까지 석면 관리에 관련된 부처는 노동·건설교통·환경·문화관광·교육인적자원부 등이다. 그러나 부처간 협조체계가 없고 범정부적인 석면 관리 시스템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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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면이 함유된 건축물을 철거하려면 내부를 비닐로 완전 밀폐하고, 방진복과 마스크를 착용하는 등 노동부의 지침을 따라야 한다. 사진은 석면 해체 기술자가 천장재를 뜯어내는 모습. 가톨릭의대 예방의학교실 제공 | | 현재로서는 석면을 직접 다루는 근로자들의 피해가 가장 심각하기 때문에 노동부가 석면관련 업무를 주로 맡고 있다. 그래서 노동자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석면 규제가 이뤄진다. 석면이 공기중에 비산(飛散)되면 근로자뿐 아니라 일반 시민도 피해대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환경부 소관의 대기환경보전법에는 대기중의 석면 관련 기준이 없다. 일본은 대기 중의 석면 입자수를 1㏄당 0.01개 이하로 규제한다.
한국환경사회정책연구소 신예섭 사무국장은 14일 “공사장 안에는 석면 농도의 기준이 있고, 바깥에는 없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면서 “석면 가루가 공사장 안에서만 머물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법령간, 부처간 좌충우돌
법령간 충돌 현상도 심각하다. 건축법 시행규칙 24조에서는 건물주나 해체업자는 건축물 철거시 시·군·구에 통보해야 하며, 기초단체장은 신고서를 검토해 석면이 함유된 것으로 확인되면 지방노동관서에 통보해야 한다. 하지만 건축물의 피난·방화구조 등의 기준에 관한 규칙은 화재에 대비해 석면시멘트판(석면과 시멘트를 섞어 만든 내벽재)을 쓰도록 권장한다. 건물을 지을 때는 석면 사용을 권장하고, 철거할 때는 석면을 철저히 없애라는 충돌과 모순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석면을 규정대로 해체해도 폐기가 문제다. 현행 폐기물관리법은 제조·해체 현장에서 나온 비산 위험이 있는 석면 제품만 지정폐기물로 관리한다. 딱딱하게 굳어져 있는 석면 제품은 일반 건설폐기물과 함께 처리된다. 한 해체업체 사장은 “우리가 아무리 잘 처리해도 최종 폐기업체가 다른 폐기물과 마구잡이로 합쳐 매립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1980년대 이후 석면 채광이 끊겼고, 석면 사용의 전면금지를 눈앞에 두고 있지만 9개 업체가 석면채광을 목적으로 광업권을 갖고 있다. 그만큼 정부가 석면 폐해에 무감각하다는 방증이다. 충남의 S광산 소유주 이모씨는 “석면과 유사한 해포석을 채굴하려고 광산을 개발했다.”면서 “석면과 비슷한 광물은 무조건 석면 광산으로 등록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규제 실효성도 떨어져
석면 관련 규제는 실효성을 상실했다. 노동부가 국회에 제출한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 한해 노동관청으로부터 석면 제거 허가를 받고 철거된 건물은 749곳에 불과하다. 한 해 8만∼10만동의 건축물이 철거되는 것을 감안하면 극소수의 건물만 석면제거 허가를 받고 철거되는 셈이다. 환경부는 석면 함유 건물을 600만채(2005년 기준)로 추정한다.
정부는 1993년부터 석면 원료를 취급하는 근로자가 퇴직할 경우 건강 관리수첩을 교부하고, 퇴직 후 매년 무료 검진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2005년까지 관리수첩을 교부받은 근로자는 558명 뿐이다. 강남서초환경운동연합 김경란 사무국장은 “철거 신고 의무를 위반해도 30만원 이하의 과태료만 물면 되는데 누가 규정을 지키겠느냐.”면서 “석면 철거를 감독하는 근로감독관도 전국에 230명에 없다.”고 지적했다.
●정부 차원 관리 시스템 만들어야
석면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우선 사용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범정부 차원의 관리 시스템 및 석면 제거 인프라 구축이 시급하다. 원진노동환경건강연구소 최상준 책임연구원은 “국무조정실 등이 부처별 협력체계를 구축해 석면 사용에 대한 실태를 파악하고, 석면 질병의 역학조사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아대 김정만 교수는 “석면 조사인력 및 분석기관, 전문철거업체, 이들을 관리·감독할 인력을 키워야 한다.”면서 “석면 관리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법령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피해자 보상과 관련해 가톨릭의대 김형렬 교수는 “석면에 의해서만 발병되는 악성 중피종은 일본처럼 무조건 국가가 배상하고, 폐암은 노출이 가능한 직업에 종사했고 잠재기간이 충족된다면 산재로 인정해야 한다.”면서 “입법이 추진되고 있는 환경보건법에 근로자뿐 아니라 일반 국민의 피해보상을 명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창구 김민희기자 window2@seoul.co.kr | |
[석면의 공포 (하)] 피해자 집단 소송사태 오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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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면의 위험성이 점차 알려지면서 석면으로 인한 직업병과 산재 인정 여부를 둘러싼 법정공방이 증가하고 있다. 현재는 주로 산업재해 인정 여부를 놓고 법정 다툼이 벌어지고 있지만 관심은 미국·일본처럼 기업을 상대로 피해자의 대규모 피해보상 소송으로 이어지느냐에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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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성중피종으로 사망한 환자의 폐. 아래 쪽이 검게 굳었다. 산업안전공단 제공 | | “1976년부터 1982년 사이 부산 연제구 연산동 옛 제일화학에서 일하신 분들을 찾습니다. 석면에 의한 악성중피종으로 진단이 나와 회사를 상대로 손해보상소송을 낼 예정입니다. 이 회사에서 일하고 폐암에 걸리신 분이나, 폐암으로 돌아가신 분들의 가족들이 충분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이 공장에서 일했던 부인을 악성 중피종으로 떠나보낸 A씨가 인터넷에 올린 글이다.A씨는 이 글을 보고 참여 의사를 밝힌 수십 명의 전직 근로자·유족들과 함께 피해보상 소송을 진행 중이다.A씨는 “회사가 석면의 위험성에 대해 충분히 고지하지 않았다. 석면에 노출된 노동자에게 발급하게 돼 있는 건강관리수첩도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석면과 관련된 요양불승인처분취소소송은 석면과 질병의 연관성을 입증하는 것이 어려워 산업재해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법원에 따르면 석면·폐암 관련 판결은 총 23건이나,14건이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지 않았다.20여년간 흡연을 했더라도 근무했던 지하철 역에서 석면 노출로 인해 폐암이 발생해 악화됐다면 업무상 재해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의 지난 13일 판결은 재해인정에 고무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손해보상소송은 사업주의 고의과실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는 점에서 직업병과 관련한 요양불승인처분 취소소송과 다르다. 사업주가 석면의 위험성을 미리 알리지 않았다는 게 소송의 핵심이다. 노동건강연대 대표인 강문대 변호사는 “사업주는 안전한 근로환경을 만들 의무가 있으므로 석면의 위험성을 몰랐다고 면죄부가 주어지진 않는다.”면서 “근거 법령은 없지만 당연하고 내재적인 조건이기 때문에 고의과실로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승소 가능성에 회의적인 시각도 없지 않다. 무엇보다 석면 질병의 잠복기가 20년 이상이고, 발병 후 곧바로 사망할 가능성이 많아 석면과 질병의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게 어렵기 때문이다. 대법원의 한 판사는 “질병에 걸린 원인이 환경적인 것인지, 유전적인 것인지 입증하는 것이 쉽지 않다.”면서 “석면과의 연관성을 제대로 입증하지 않고서는 승소가 힘들 것”이라고 내다 봤다. 근로자뿐 아니라 일반인이 석면으로 인한 손해보상소송을 낼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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