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억울하면 인터넷에 호소하라는 외교부

aazoo 2010. 2. 6. 19:43

억울하면 인터넷에 호소하라는 외교부

 시사IN | 고재열 기자 scoop@sisain.co.kr

 

                                                   시사IN  http://www.sisain.co.kr

 

해외에서 갑작스럽게 사건사고에 연루되었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세 가지다. 먼저 현지 한인회나 한인 교회에 연락한다(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다음 현지 대사관이나 영사관에 연락한다(나중에 책임을 물을 수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인터넷에 올리고 언론사에 호소한다(그래야 정부가 움직인다).

사이판 관광 중에 총격을 당하고 척추 관통상을 입은 박재형씨(39), 온두라스에서 살인범 누명을 쓰고 재판을 받고 있는 한지수씨(26), 호주에서 혼수상태에 빠질 정도로 폭행을 당했지만 오히려 살인미수 혐의를 받고 있는 최진호씨(28), 이들 세 명의 사례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스스로 '언론플레이'를 하지 않으면 국가가 나서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사이판 관광 중 총격을 당한 박재형씨는 총알이 척추를 관통해 반신불수에 이를 수 있는 큰 부상을 당했지만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박재형씨는 2009년 11월20일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이날 오전 사이판 관광에 나선 박씨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최후사령부였던 곳 앞에 서 있었다. 일행은 관광을 했지만 그는 일본군 시설이었던 곳을 구경하는 것이 내키지 않아 주변 풍경을 감상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한 남성이 차를 세우고 총을 난사했다. 총소리에 깜짝 놀라 엎드렸지만 총알은 박씨의 배낭을 뚫고 척추를 관통했다. 총을 쏜 사람은 인근 사격장에서 일하던 중국인 노동자로 주인 부부를 사살한 뒤 자살하러 가는 길에 관광객을 무차별 공격했다. 그후 그 노동자는 자살했다.

국민이 죽을 상황에 처했는데도

총격은 박씨가 사이판 관광을 시작한 지 45분 만에 벌어졌다. 이후 박씨에게 닥친 일은 악몽의 연속이었다. 시내에서 10분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지만 가이드는 휴대전화가 터지지 않는다고 했다. 결국 박씨는 응급조치도 받지 못한 채 구급차가 아닌 관광버스를 타고 병원으로 이동했다.

박씨가 도착한 병원은 시설이 열악했다. 의사는 박씨에게 수술을 시도했으나 개복을 한 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방치했다. 척추수술을 할 수 있는 의사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한국에서 급히 연락을 받고 날아온 형 박형돈씨(43)는 당시 상황에 대해 "개복한 동생의 배를 거즈로 덮어둔 채 아무 대책 없이 방치해두고 있었다. 국내로 후송하지 않으면 동생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방법이 없었다. 국내 항공사에 알아보았지만 후송 중 사망할 가능성이 있다며 거절했다. 외교통상부에서 알려준 환자후송 전문 영리단체에서 운영하는 비행기는 비용이 몇 천만원씩이나 해서 엄두를 낼 수도 없었다. 박씨는 한국의 아내에게 전화해 YTN에 연락했다. 그리고 휴대전화 동영상을 찍어 인터넷으로 YTN에 보내주었다. YTN에서 사고 소식이 밤새 방영되었다.

그제야 현지 보건부장관, 병원장, 한인회장, 한국영사가 이튿날 아침 회의를 열고 후송을 결정했다. 현지 정부가 괌을 통해 제트기를 이용할 수 있도록 주선해주었다. 박씨는 현지 병원에서 요구하는 한국 의사의 인적사항과 동의서, 서울대병원 연락처 등을 전해주고 서울대병원에서 요구하는 현지병원 진료소견서와 CT사진 등을 보내주었다. 그렇게 해서 서울대병원으로 후송된 동생은 세 번의 수술 끝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동생의 응급치료를 위해 싸워야 했던 형은 이번에는 동생의 피해보상을 위해 싸워야 했다. 언론 보도가 잦아들자 여행사가 보상에 대한 태도를 바꿨다. 후속 보도가 별로 나오지 않고 이 사건의 관광객 유치에 영향이 별로 없는 것으로 나타나자 여행사는 무심해졌다. 박재형씨의 아내는 "여행사 담당자가 총격사건은 천재지변이나 마찬가지로 여행사가 책임질 일이 아니라는 것이 법무팀의 판단이라고 전했다"라고 말했다.

"일단 환자부터 살리고 보상은 천천히 이야기하자"라고 말하던 여행사 측의 태도가 돌변한 데 대해 아내는 인터넷에 난 기사를 읽어보고 그 이유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인터넷 뉴스를 보니 총격 사건 후유증에서 벗어나 사이판 관광이 정상화되었다는 내용이 나왔다. 여행사 사람들이 연락도 안 하고 태도가 돌변한 이유가 이것이었구나 생각하니 분통이 터졌다"라고 박재형씨의 아내는 말했다.

형을 비롯한 가족들은 이때부터 인터넷에 호소하기 시작했다. 포털사이트 다음에 '사이판 총격사건, 그 후 더 붉어진 눈물'이라는 카페를 만들었고(http://cafe.daum.net/saipanning) 아내는 블로그를 만들어 호소했다(blog.daum.net/math-p). 그만큼 보상이 절박했기 때문이었다. 박씨의 형 박형돈씨는 "외교부 담당자가 그랬다. 인터넷에 호소하라고. 자신들에게는 방법이 없다고 했다"라고 말했다.

박재형씨가 받을 수 있는 보상은 여행상품을 구입할 때 가입한 여행자보험뿐이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병원비는 한번에 1000만원 이상씩 청구됐지만 여행자보험으로 지급되는 비용의 한도액은 300만원이었다. 6개월 후 후유장애 판정을 받으면 정확한 보상비가 나오지만 60% 장애 판정을 받는다고 해도 보험사에서 받을 수 있는 돈은 4000만원 정도로 병원비를 대기도 빠듯한 금액이었다.

외교통상부 담당자는 북마리아나연방정부가 12월7일 선거를 치르고 나면 협조를 해줄 것이라고 안심시켰다. 하지만 현지 총격사건의 또 다른 피해자인 김만수씨가 지역구 국회의원을 통해 파악한 바에 따르면, 이미 외교부는 북마리아나연방정부로부터 보상해줄 제도도 없고 책임도 없다는 답변을 받은 상태였다.

사이판 등 북마리아나제도에는 연간 한국 관광객이 10여만 명 정도 방문한다. 이는 일본(20여만 명)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숫자로, 북마리아나제도 전체 관광객의 4분의 1에 해당한다. 부산 사격장 화재 사건 때 우리는 장관이 나서서 사과하고 각종 보상지원 정책을 폈지만 정작 우리 국민은 피해를 당하고 보상은커녕 사과 한마디 받지 못한 꼴이다. 이에 대해 외교부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부산 사격장 화재 사건과는 다르다. 기사화할 만한 사건이 아니다"라고 극구 의미를 축소했다.

사이판 당국, "총격 피해 보상 못해"

북마리아나연방관광청도 무심했다. 피해 관광객이 한국에 도착해 치료받는 동안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었고 연락한 적도 사과한 적도 없었다. 사이판 총격 사건과 불충분한 보상에 대해 사과할 의향이 없느냐고 북마리아나연방관광청 한국지사에 문의하자 담당자는 "본국에 문의하겠다"라고 답했다.

블로그에 '사이판 총격사건 피해자 아내의 한숨'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는 박씨의 아내는 "병문안 오는 지인들이 그런다. 'MB 정부에서 받을 수 있겠나, 미국인데.' 국가가 당연히 이 정도는 해줄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았다. 내가 이 나라의 국민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북마리아나연방정부의 보상 및 사과 문제에 대해 외교부 재외국민보호과 김유철 과장은 "외교부가 문의한 것은 북마리아나연방정부에 '범죄피해자 구조법'이 있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보상과 사과가 이뤄지지 않은 데 대해 우리 정부가 조만간 유감 표명을 할 예정이다. 피해자 구제에 대한 부분은 잠시 숨 고르기를 하고 있는 것일 뿐 잊지 않고 있다"라고 해명했다.

해외에서 아무 잘못 없이 일방적인 피해를 당하고도 적절히 보상받지 못한 박재형씨 사례와 달리 온두라스 한지수씨 가족들은 인터넷과 언론을 적절히 활용해 정부의 지원을 이끌어낸 경우다. 트위터를 통해 한지수씨 사연을 들은 정동영 의원이 보석 석방을 위한 정부의 신원보증을 주장해 보석을 이뤄냈다. 이 과정에서 정부도 남미법 전문가와 법의학자가 포함된 전문가 긴급대응팀을 보내 적극적으로 도왔다.



온두라스의 한지수씨를 돕기 위한 인터넷 카페에는 2000명이 넘는 누리꾼이 가입했다.
한지수씨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다이빙 강사 자격증 취득을 위해 온두라스에 갔던 한지수씨는 2008년 같은 집에 살던 호주인 남성(영국 이중국적자)이 데리고 온 네덜란드인 여성이 화장실에서 쓰러지자 함께 응급조치를 했다. 그리고 병원에 옮겼는데 이 여성이 사망했다. 사망 후 참고인 조사를 받던 한씨는 다이빙 강사 자격증을 딴 뒤 귀국한다.

그리고 몇 달 뒤 이집트에서 다이빙 강사 일을 마치고 귀국하려고 출국하다 이집트 공항에서 체포된다. 인터폴에 적색수배자로 이름이 올라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락되었던 사건이 네덜란드 정부의 요구로 재수사가 이뤄지면서 한씨는 피의자로 둔갑했다. 보통 외국인을 체포하면 해당 대사관에 통보해주게 되어 있지만 외교 관행을 깨고 이집트 정부에서 통보해주지 않아 주이집트 한국대사관에서는 이 사실을 파악하지 못했다. 인터폴 자료에 국적이 표기되어 있지 않아 경찰청 역시 한씨의 체포 사실을 파악하지 못했다.

다행히 한씨 본인이 기지를 발휘해 가족에게 연락이 닿고, 가족이 대사관에 연락해 사건이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집트 정부는 영사 면담을 허용해주지 않았다. 우리 정부가 손을 쓸 겨를도 없이 한지수씨는 온두라스로 송환되었고, 언니인 한지희씨를 비롯해 가족과 친지들이 인터넷에 호소하기 시작했다. 지인들은 한지수씨 구명 카페(cafe.daum.net/onlyforhan)를 만들어 적극적인 구명활동에 나섰다. 현재 이 카페에는 2000여 명의 회원이 가입해 모금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영문사이트 등도 개설되어 있다. 이런 활발한 활동 덕분에 < 추적 60분 > (11월11일) 등 언론에 본격적으로 보도되기 시작했다.



한지수씨가 수감되어 있던 온두라스 라세이바 교도소(위 오른쪽). 시설이 극히 열악하고 위험한 곳이다. 위 왼쪽은 교도소 내부 모습.

 

지인들의 도움으로 한지수씨는 온두라스 교도소에서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는데, 트위터 아이디를 만들고 접속해 누리꾼들과 만났다(@freejisoo). 언니 한지희씨(@hanjihi)도 트위터로 적극적으로 알렸는데 정동영 의원(@coreacdy)이 사안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현황 파악에 나섰다. 정 의원은 한씨가 수감된 교도소가 위험한 곳이라는 것을 파악하고 보석을 위한 구명활동을 폈다. 정 의원은 "우리 정부는 개인에 대해서 보증할 수 없다"라고 말하던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에게 기회가 될 때마다 보석을 위한 '신원보증'을 요구해 관철시켰다.

지난해 11월18일 정 의원은 주한 온두라스 친칠라 대사를 만났다. 그리고 친칠라 대사 역시 한지수씨의 결백을 믿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우리 외교부가 정식으로 공문을 보내지 않아서 대사의 구명활동이 지체되고 있다는 것을 파악했다. 친칠라 대사는 온두라스 법무부장관과 친한 친구 사이로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또 한국에 7년이나 근무한 대표적인 지한파로 미국·일본·대만과 함께 온두라스에 대사관을 두고 있는 4개국 중 하나인 한국에 우호적인 인물이었다.

언론 보도와 국회의원의 활동에 압박을 느낀 외교부는 11월 말 전문가팀을 구성해 온두라스 현지에 보냈다. 전문가팀에는 남미법 전문가와 국제법 전문가, 그리고 법의학 전문가와 베테랑 수사관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전문가팀의 활동 덕분에 12월14일 한지수씨가 드디어 보석 결정을 받았다. 해외에서 우리 국민과 관련된 재판 때문에 전문가팀이 파견된 것은 전례가 없는 일로 재외국민 보호의 새로운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지수씨 사례는 이슈화되었을 경우 국가가 재외국민 보호를 위해 움직일 수 있는 최대치를 보여준다. 반면 호주 최진호씨 사례는 이슈화 되지 못했을 경우 참담한 결과를 보여준다. 일주일 동안 혼수상태에 빠져 있을 만큼 흠씬 두들겨맞고도 최씨는 현재 '살인미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일하던 최진호씨는 폭력사건에 휘말려 살인미수범으로 몰려 있다.
인터폴에 한국인 체포돼도 한국 정부는 몰라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멜버른 근처 농장에서 일하던 최씨는 지난해 10월25일 새벽 일을 마치고 농장의 다른 한국인들과 술을 마신 뒤 함께 있던 거구의 뉴질랜드인에게 폭행을 당했다. 그는 방어를 위해 자기 방에서 과도를 꺼내들고 나갔다. 최씨는 "그에게 따지기 위해 갈 때 뭉툭한 과도를 들고 갔다. 찌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칼이라도 들고 있으면 나를 무시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라고 말했다.

다시 시비가 붙었고 드잡이가 벌어진 가운데 뉴질랜드인은 칼에 찔렸고 최씨는 철제 의자로 머리를 맞고 쓰러졌다. 최씨는 쓰러진 뒤 20~30분 동안 더 구타당했다. 술자리의 다른 한국인들이 경찰에 신고한 뒤에야 폭행은 중단되었다. 최씨는 두개골 결절, 안구 함몰 등의 부상을 당하고 일주일 동안 혼수상태로 병원에 누워 있었다. 현재도 왼쪽 눈 시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고, 전반적으로 심신미약 상태다.

최씨가 혼수상태로 있는 동안 초동수사는 거의 마무리되었고 최씨는 모든 잘못을 덤터기 쓰고 '살인미수범'이 되어 있었다. 외교통상부 역시 호주경찰의 조사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여 최씨를 살인미수범으로 발표했고 이 내용은 그대로 기사화 되었다. 기사에서는 "최씨에게 등과 팔 등 3군데를 찔린 뉴질랜드인은 폐에 물이 차는 등 생명이 위독했으나 여러 차례의 수술을 거쳐 현재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라고 최씨를 일방적 가해자로 묘사했다.

그러나 현장을 직접 조사하고 온 교포의 이야기는 달랐다. 교포 지사인씨(가명·45)는 "뉴질랜드인은 치명상을 입지 않았다. 뭉툭한 칼에 조금 찔렸을 뿐이다. 어떻게 치명상을 입은 사람이 20분 이상 사람을 폭행할 수 있나. 그리고 생명이 위독했다는 그는 농장에서 한가롭게 음악을 들으며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정동영 의원(오른쪽)은 친칠라 주한 온두라스 대사(왼쪽)를 만나 한지수씨에 대한 공정한 재판을 부탁했다.
지씨는 "경찰 조사는 뉴질랜드인과 최씨를 의자로 내리 친 한국인의 진술에 의존했다. 현장에서 만나본 다른 목격자는 경찰 조사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해주었다. 지금은 목장에서 일을 하고 있어서 밝힐 수는 없다고 했지만 조만간 사실을 밝히겠다고 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날 최씨가 술을 마신 술자리에는 한국인 7~8명이 더 있었다. 이들에 대한 조사가 아직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사건에 대한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데 대해 외교부 담당자는 "당시 멜버른 지역에 영사 협력원으로 위촉된 교포가 출장 중이어서 원활하게 소통이 되지 않았다. 지리적으로나 상황적으로 사각지역이었다. 호주에 경찰 영사가 파견되어 있지만 시드니 지역에 있어서 관할 구역이 다르다. 사건에 대한 조사가 미흡했다는 것은 인정한다"라고 말했다. 외교부는 사건을 재조사해 뉴질랜드인의 과도한 정당방위에 대해서 규명하겠다고 밝혔다.

오는 2월 중순 재판을 앞두고 있는 최진호씨는 "대사관에서 내 이야기를 인터넷에 올리거나 언론에 알리지 말라고 해서 안 알렸다. 내가 대사관으로부터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 대사관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돈이 없어 병원에서 강제 퇴원돼 제대로 된 치료도 못 받고 있는 상황이다. 대사관에서는 좀 지켜보자는데,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홀어머니가 귀화한 중국 교포인 최진호씨는 넉넉지 않은 형편 때문에 어머니가 돈을 벌기 위해 귀국하면서 그는 현지 한인교회(우물교회)에 의탁해 있다. 재판도 국선변호인을 선임해 치르고 있다. 해외 수감자 사례를 살핀 정동영 의원은 "호주의 한국인 수감자 절반 이상은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간 젊은 사람들이다. 이들이 현지 법규와 사법제도를 잘 몰라서 억울한 수감생활을 많이 하고 있다. 이에 대한 대비책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국회법제사법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홍일표 의원이 외교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해외에 수감된 한국인 수형자는 43개국 1306명이다. 이 중 국내로 이송된 한국인은 고작 14명뿐이다. 1000명이 넘는 수형자 중 억울한 수형자가 몇 명이나 되는지 아직 파악조차 못하고 있다.

해외에서 재외국민 관련 사건사고가 발생하면 외교부는 신속하게 상황을 파악한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외교부가 맡는 역할은 '해결'이 아니라 '현황 파악'이다. 직접 해결에 나서게 하기 위해서는 움직일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그 힘은 보통 인터넷과 언론에서 나온다. 인터넷과 언론을 통해 외교부가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은 개인의 책임인 셈이다.

고재열 기자 / scoop@sisain.co.kr